미국이 11·3 대선 이후 극심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우편투표 급증으로 개표 완료가 늦어지는 가운데 핵심 승부처에서 박빙의 대결이 벌어져 투표 종료 후 하루가 지나도록 당선인조차 확정짓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뒷심을 발휘하며 치고올라와 대권을 넘볼 수준까지 이르자 우편투표를 문제 삼아 사실상 대선 불복인 재검표와 소송 카드까지 꺼내들고 판 흔들기에 나섰다.
어렵사리 개표가 완료되더라도 '포스트 대선 정국'은 두 후보 간 진흙탕 싸움 속에 법원의 손에 의해 당선인이 결정된 2000년 재검표 논란의 악몽을 반복할 공산이 커졌다. 당분간 미국의 대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개표 초반은 트럼프 대통령의 예상밖 우위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후보가 앞선다는 결과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승부를 결정짓는 6개 경합주 중 5개 주에서 리드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필수 방어지역이던 플로리다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개표율이 올라갈수록 상황이 변했다. 바이든 후보가 맹추격전을 벌이며 북부 경합주인 '러스트벨트' 3개 주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주에서 개표 초반 두 자릿수로 앞섰지만 지금은 바이든 후보가 위스콘신과 미시간을 역전했고, 핵심 승부처 펜실베이니아에서도 격차를 좁히고 있다.
또다른 경합주 애리조나를 놓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러스트벨트까지 뺏기면 패배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를 문제 삼았다. 평소 우편투표를 사기투표라고 주장해온 그가 우편투표 때문에 표를 부당하게 뺏기고 있다며 러스트벨트 3개 주를 대상으로 대응 조치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선 캠프는 이날 위스콘신의 재검표를 요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위스콘신의 경우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을 0.6%포인트로 누른 것으로 집계했다.
트럼프 캠프는 또 미시간과 펜실베이니아를 대상으로는 개표중단 소송을 제기했다.
한 마디로 러스트벨트 3개 주의 개표작업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자, 이들 3개 주 개표가 끝나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이어지는 결과를 막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캠프 빌 스테피언 선거대책본부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일부 주의 선거 결과에 이의 제기를 준비하고 있다며 합법적인 투표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이슨 밀러 선임고문도 "우리는 합법적으로 투표한 모든 투표용지가 개표되도록 하고 싶다"며 "불법적으로 투표한 용지는 집계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새벽 "우리는 (연방)대법원으로 갈 것이다. 우리는 모든 투표를 중단하기를 원한다"고 밝힌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바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번 논란은 결국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심급 구조상 연방대법원에 바로 소송을 낼 수 없어 1·2심을 거쳐야 한다.
대선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패배시 불복하며 소송전을 벌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이런 예상이 현실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임명한 연방대법관 3명을 포함해 보수 6명, 진보 3명 등 보수 절대 우위의 대법관 구성이 소송에 유리한 결과를 이끌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관측도 있다.
반면 바이든 캠프는 막판 역전극에 고무된 듯 "승리의 궤도에 올랐다"며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소송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법정 싸움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바이든 캠프의 밥 바우어 법률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예상했다고 한 뒤 "우리는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며 "그는 패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젠 오말리 딜런 선거대책본부장은 위스콘신 재검표 요구와 관련해 "패자는 재검토를 요구할 수 있다"며 "우리가 리드하고 있고 이는 계속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대선 후 개표 지연은 물론 재검표와 소송 사태로까지 비화함에 따라 미국의 합법적인 당선인 공백 상황이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 양 진영의 대립 속에 극심한 혼란과 분열이 지속하며 미국 사회를 혼돈으로 내몰 수 있다. 결론이 나더라도 또 다른 불복 사태가 빚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워싱턴=연합뉴스) 임주영 특파원 z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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