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은 스스로 신속하게 변화를 꾀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되는 집단의 경우 그것이 쉽지 않다. 더욱이 어떤 사회나 민족은 개인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관성이 강한 편이다. 근래에 한국 사회의 공적 영역에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한 사회의 진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잦다. 1. 어떤 민족에 민족성 혹은 민족의 원형이란 것이 있는가? 사람에 따라 다양한 견해를 가질 수 있지만, 유럽의 경우 독일 민족(사회)과 이탈리아 민족(사회)을 비교할 때면, 어떤 집단에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가까운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더라도 각각의 고유한 특장점은 물론이고 단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쉽게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일정 기간 동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나 환경 때문에 용수철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억제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순식간에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2. 2007년에 출판된 <대한민국 기로에 서다: 안병직 이영훈 대담>(기파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안병직: 일정시대에는 아버지가 학교에 쌀을 지고 가시는 것
1. 윤석열 대통령 연설문에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가 바로 '자유'이다. 7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자유 예찬이 광복절 경축사를 가득 채우고 있다. 하나하나 세보지 않았지만 수십 번의 '자유'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2. 광복절 경축사에 등장하는 '자유'는 다음과 같다. "이 위대한 여정을 관통하는 가치는 바로 자유입니다. 우리의 광복은, 자유를 향한 투쟁의 결실이었습니다." "먼저, 우리 스스로 자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더욱 강하게 가져야 합니다. 우리 안의 자유를 굳건히 지켜야만,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주도하는 통일 추진 세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유는 투쟁으로 얻어내는 것입니다. 결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정부는 우리 사회에서 자유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3. 대통령 경축사를 접하면서 나는 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 왔습니까?" 아마도 윤 대통령은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반대의 의견을 제시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려한 취임사와 광복절 경축사 등에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은 일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다. 탄핵이 누구 집 아이 이름처럼 불리는 세상, 대통령이 거부권을 밥먹듯이 행사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 누가 보더라도 범죄 혐의가 명백하지만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 사람들. 온전한 세상이라면 좀처럼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1. 아침에 우연히 한 분의 페이스북에서 이런 글을 만났다. 이 분에게는 지금 상황이 무척 생경하고 당혹스런 모양이다. 사실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말이다. 아무렇지 않다는 이야기는 이미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을 뜻한다. "조국 가족들을 보면 죄를 지었어도 정치를 하고 정당을 만들고 대표도 하고 아들은 연대대학원 입학취소되는가 했더니 서울대 대학원 합격하고 조민은 아무탈없이 의대 졸업하고 의사도 되었다가 취소되는가 하면 인플루언서로 떴다가 조용히 각계각층의 축하를 받으며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루었다. 정경심은 가석방되는가 싶었는데 김경수와 나란히 사면복권 명단에 오른다... 혼란스럽다." 출처: YS Jee님 페이스북 2. 지금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대부분 일들의 근원이 선거공정성의 훼손 떄문이라고 분명히 지적할 수
의과대학 증원문제. 백번 양보해서 윤석열 대통령이 옳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꺼번에 60% 가깝게 의대증원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거칠고 미숙한 일처리 방식에 대해 실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설령 윤 대통령이 옳다고 가정하더라도 5%, 10% 정도 선에서 점진적으로 바꾸어 가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1. 2천명 증원 과정에서 의료계와 협의다운 협의도 없이 증원 정책을 밀어붙인 것은 윤 대통령이 평소에 세상사를 어떻게 대해 왔는지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몇십 년 동안 한 분야에 종사해 온 사람들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도저히 범접할 수 있는 특별한 지식을 갖고 있다. 이런 부분을 깡그리 무시할 수 있다는 정신세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단순히 무식하다 혹은 거칠다는 표현만으로 담아낼 수 없는 일이다. 2. 한편 이번 의대 증원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한국의 기성세대가 얼마나 전체주의적이고 고압적인 일처리 방식에 익숙한지를 보여준 셈이다. 옳지 않은 일, 사실이 아닌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이를 무기로, 자리를 무기로 젊은 세
"사전투표소를 방문하는 세명당 1명(조작값 4=3+1), 혹은 네명당 1명(조작값 5=4+1) 등과 같은 방법으로 유령 사전투표자수가 사전투표 양일 즉 24시간 동안 만들어졌다. 사전투표소에 오지 않은 유령 사전투표자라는 가공의 숫자 즉 헛수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들 헛수는 등차수열이라 불리는 초등학교 5년생 수준의 산수 개념으로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 선관위는 사전투표 양일 사이에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누적 사전투표자수를 집계한다. 이들 24개의 숫자를 분석하면, 누적 사전투표자수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3500여개의 읍면동에서 모두 규칙을 찾아낼 수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누군가 규칙(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누적 사전투표자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규칙을 이용해서 사전투표자수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유튜브 채널 '시골촌부'에 의해서 밝혀졌다. 2. 다음은 3500여개의 읍면동 가운데 경북 영주시 하망동 누적사전투표자수이다. 사전투표 1일차 오전 7시 누적사전투표자수 30명 기준으로 보면 다음과 같이 헛수(유령 사전투표자수)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사전투표소를 방문하는 모든 투표자는
"그냥 건너뛰는 법은 없다" 반드시 건너뛰게 되면 그것에 상응하는 비용을 개인이든 국가든 치루게 된다. 근래 한국 사회에서 선거부정 문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1. 한국인들은 투쟁을 통해서, 피를 흘리면서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다. 서구유럽처럼 근대시민사회를 경험하지 못한채 조선말기, 일제 치하 그리고 갑자기 근대인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운좋게 월반을 한 셈이다. 한반도 남쪽에 미군정이 자리잡는 행운이 있었고, 이보다 엄청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남 이승만이란 인물이 있었던 점이다. 고생하는 동포들을 노예민으로부터의 자유민으로 탈피하시켜야 겠다는 반듯한 신념을 가진 이승만이란 인물이 있었기에 자유국가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2. 이후에도 경제계발 계획에 추진되면서 국가주의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정부 권력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에 관한 읽을 만한 책이 아주 드물었다.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와 미제스, 하이에크 등의 오스트리안학파들이 저자인 책이 손에 꼽을 정도가 있었다. 그만큼 학계, 문화계 등에서 '국가권력의 제어, 개인 자유의
반복적인 선거부정은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부정선거를 시도하는 자들의 의미에 대해서 일찍부터 아래와 같이 뚜렷하게 생각을 정리한 바가 있다. 핵심은 "선거사기는 6.25전쟁에 필적한 전쟁이다"라는 것이다. "선거사기는 6.25전쟁에 필적하고 남음이 있는 전쟁을 뜻한다. 전자는 내부의 적들로부터 침략이 발생한 것이고, 후자는 외부의 적들로부터 침략이 발생한 것이다. 두 가지 침략 모두 공통점을 갖고 있다. 침략한 자들은 체제 변혁을 통해서 국민의 참정권, 자유, 생명, 미래 등은 빼앗는 것이다. 선거사기 세력들은 자기들 그룹에 속한 사람들 끼리 철저하게 해먹는 그런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손쉬운 방법인 선거를 장악할 시도를 하였다." 1. 선거부정의 이같은 의미 부여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한 것은 아닌 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정치권력과 국민 사이에 상호관계를 잘 풀어서 쓴 존 로크, <통치론>에서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존 로크의 명저는 우리들에게 다음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대한민국에 반복되고 있는 선거사기를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특정 정치세력들이 국가를 장악할 때 눈에 특별히 띄지는 않지만, 그런 조짐들을 여기저기서 관찰된다. 대부분 시민들은 생업에 바쁘기 때문에 이같은 진행 사항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할 겨를이 없다. 그러나 사회 현상을 예리하게 지켜보고 사심이 없는 사람들은 '조용한 국가 전복(체제 탈취)' 현상이 단박에 오는 혁명적인 사건이 아니라, 긴 시간을 두고 특정 세력들이 목표를 갖고 추진하는 일종의 과정(process)으로 이해한다. 1. 지금 운좋게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벤트에 열을 올리고 권력을 행사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위기의식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냥 일상의 이벤트에 매몰된 것처럼 보인다. 권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정치를 계속해야 하기 떄문에 그냥 대세를 받아들이고 한 자리를 얻는데만 전력투구하고 있는 모양새다. 2. 나는 윤석열 정부 하에서 두 번의 공직선거에서 문 정권 하에서 5번의 공직선거와 마찬가지로 득표수 조작이 일어난 것을 확인하면서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구나"라는 사실을 한번 더 확인하였다. 그렇다고 놀라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득표수 조작을 예상하고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 아주 대단한 사건이라도 어떤 사람에겐 엄청난 일로 다가오지만 또 어떤 사람에겐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별로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은 일일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키던 그 사건이 얼마나 나라의 진로를 바꿀 지 많은 사람들은 무시하지 않았던가! 1. 서울대를 나와서 1960년대 도미해서 학위를 마치고, 미국 대학에서 재직했던 한 분이 있다. 그분은 노년의 끝 부분을 조국에서 마무리하려고 미국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50년만에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미국을 떠난 것이다. 80대에 접어든 그 분의 눈에는 도무지 그토록 그리던 조국이 더 이상 조국이 아니다.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한 그 분의 눈에 부정선거는 피할 수 없는 주제였다. 그냥 외면하고 넘어가기에는 그 분에게는 너무 엄청난 일이다. 그 분은 계속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논평의 글을 보내고 있다. 3월 1일에 보낸 글에는 자신이 어떻게 미국 유학 길에 오르게 되었는지, 얼마나 험한 고생을 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룬 글과 함께 "조국은 옛 조국이 아니다"라고 격정을 토로한다. 엇그제 7월 28일에 보낸 297번째 글에는 "대한의 젊은이
"삶의 문제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다." 살아가는 일이 문제 해결 과정이라고 이해한다면, 개개인이 삶의 여러 국면에서 갖게 되는 문제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다. 따라서 외부로부터타인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웃들의 어려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1. 최근에 이웃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는 일이 편리해졌지만, 이런 저런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은 전체 통계가 아니라 주변에서 겪는 경험치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런데 공식적인 통계에서를 살펴봐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11월에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NMHC)이 발간한 <정신건강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들의 극단적 선택 비율도 높은 편이지만, 여기에 더해 정신질환자가 치료 받고 퇴원한 이후에도 피해야 할 선택을 행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일반인구의 4배 이상, 10만명당 650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2. 가슴 아픈 이야기는 엄마가 두 아이를 데리고 내린 어처구니 없는 선택이다. 주변 사람들은 변고가 발